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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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이 지나 이젠 완연한 겨울, 다사다난했던 공무원노조 사무국장으로서의 임기가 끝이 보이는 이 즈음, 비로소 난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무심히 책장을 둘러보다 이전에 사 놓고 읽지 못했던 한나 아렌트의 책을 집어 들었다. ‘악의 평범성’을 역설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 한나 아렌트의 또 다른 역작 <인간의 조건>. 유대인인 그녀는 비정한 인생을 통해 근본악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철학자로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평생 고뇌했다. 

<인간의 조건>에서 한나 아렌트는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 이 세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삶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노동이란 최소한의 생존유지를 위한 활동을 말한다. 즉 먹고 사는 일이다. 역사상 인류가 수렵, 채집, 농경을 배운 것은 생명의 필요성에 대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근대에 들어 노동에 사용되는 도구가 극적으로 개량되어 인류는 스스로 몸을 움직여 노동할 필요가 사라졌다. 이는 종속되는 것을 실감키 어렵게 해 자유로워지려는 동기를 사라지게 했다.

작업(work)은 노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으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인위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활동을 말한다. 예를 들면 물건을 만들고 건물을 짓는 것들 말이다. 

노동과 작업 이 두 가지는 동물도 하는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행위라 명명된다.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 속에서 상호작용, 의사소통하는 것이 바로 ‘행위(action)’다. 행위의 최적합한 모델로 그녀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도시국가)를 제시했다. 폴리스는 단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행위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그물망을 말한다.

하지만 근대 사회로 올수록 행위는 등한시 되고, 작업도 대량화, 기계화되어 예술성을 잃어가며, 오직 노동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즉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인간이 자발성을 가지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 즉 사람들과 소통하고 토론하고 이야기하며 관계 맺고 정치하는 이런 것들은 다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제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고, 생존의 필요성에 예속되어 오직 생존만을 외치는 동물성 유지(노동, 작업) 이외에 인간성 발휘 능력(행위)은 유실되었다. 
 

철학적 사유만이 유일한 대안

이처럼 과학과 기술이라는 새로운 근본악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의 인간의 조건을 지켜내야 하는가? 한나 아렌트의 대답은 ‘철학적 사유’였다.

한나 아렌트는 근본악을 정의하고 그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야 할 방도에 대해 더 깊이 사유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향과 구체적인 실천철학을 제시했다. 현대인은 과학과 기술의 편리함에 기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의 ‘근본악’이다. 이 근본악은 인간 속에 내재된 악한 충동들과 결합하여 인간세계에 엄청난 재난과 불행을 일으키고 있다. 이 불행을 저지하기 위한 최고의 선은 철학적 사유밖에 없다. 그것은 단지 삶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고 행위하는 것이다.

바쁘고 정신없는 현대사회에서 사유하는 삶이란 한없이 사치스러운 고민일 것이다. 24시간중에 과연 몇 분이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가가 부의 척도라 느껴질 만큼 시간은 없고, 노동은 고되며 내가 누구인지를 잊게 한다. 그 모든 어려움을 뚫고 사유하고 판단하는 시민이란 그 어느 종교의 수행자만큼이나 고귀하고 어려운 일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사유하고 판단하지 않는 시민에게 정치적 자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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