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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끌려다니기만 할 것인가

기사승인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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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월 1일,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에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보전상황보고서>(이하 2019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갱신보고서는 2018년 제42차 총회에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 정부에게 2017년도 <보전상황보고서>(이하 2017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내린 요구였다. 2017보고서에는 산업혁명 유산에 대한 일본 정부의 해석 전략이 들어 있었다. 해석 전략 중 특히 '전체 역사‘와 관련해서는 조선인․중국인 강제노동과 민족차별 문제를 다룬 역사 자료나 피해자의 증언 등은 수집하지 않고, 오히려 강제노동․민족차별을 부정하는 자료와 구술 수집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세계유산위원회는 2017보고서가 ’전체 역사’를 기술하도록 요구한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 이행에 미흡하다고 보고 “설명 전략에 관한 국제적인 모범 사례를 고려하도록” 촉구하는 한편, “관계자와 대화를 계속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를 하고, 2019.12.1까지 갱신한 보고서를 제출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베 내각은 주요 ‘관계자’라 할 수 있는 한국과 중국의 강제동원 피해자․단체나 NGO, 전문 연구자와 단 한 차례도 대화를 한 바 없다. 있었다면 강제노동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주민이나 연구자들뿐이었다. ‘전체 역사’를 기술하도록 권고한 사안도 오로지 강제노동과 민족차별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증언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2019보고서는 위원회의 결의를 사실상 무시하고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 맘대로 하겠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보고서이다. 2017보고서와 2019보고서 모두 권고 사항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강제노동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일관되고 있다.

아베 내각이 이처럼 산업혁명유산에서 강제노동의 역사를 집요하게 부정하고 있는 것은 작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내린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되어 있다. 한국 대법원은 미쓰비시와 일본제철 두 회사에게 한국의 헌법 정신과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규범을 기초로 원고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아베 내각은 이 판결을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라 강변하면서 두 회사에게 배상금을 지불하지 마라고 강요하는 한편, 한국을 상대로 경제보복 조치까지 강행했다. 그리고 국제 사회를 상대로 ‘징용’이라는 단어조차 폐기하고 ‘구 한반도 출신 노무자’로 용어를 사용하여 강제노동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와 관련해서 “조선인 노동자를 포함하는 노무자에 관한 정보수립‘을 국가기관이 직접 수행하지 않고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에 용역을 위탁한 점이다. 산업유산국민회의는 형식상 민간단체이지만 재계와 정치계가 대거 참여해서 산업혁명유산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는 단체이다. 사실상 일본 정부의 대행기관이다. 일본 산업혁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사령관 역할을 했던 가토 고코가 올해 내각 참여에서 물러난 뒤 산업유산국민회의의 전무이사를 맡았다. 아베 내각과 산업유산국민회의가 어느 정도 유착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정보공개청구 통해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산업유산국민회의의 조사보고서(2016, 2017, 2018 각년도)에 30억이 넘는 엄청난 용역비가 지불되었다. 스캔들급 보고서로 산업유산국민회의에 돈을 주기 위한 명분용 보고서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터무니없을 만큼 부실한 데다 내용 또한 편향적이다. 특히 2018년도 갱신보고서는 전체 분량의 2/3를 산업사에 할애하여 기술이전에 초점을 두었고, 1/3은 미이케탄광에서 근무했던 직원의 구술을 실었다. 그러나 많은 부분 먹칠하여 증언의 맥락을 알 수 없게 하였고, 조선인 강제노동과 민족차별을 부정하는 유도성 증언으로 일관되어 있다.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도 모두 전쟁포로로 인식하고 있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결여되어 있다.

산업유산국민회의가 운영하는 웹 사이트 ‘군함도의 진실’은 강제동원 피해자와 연구자들이 남긴 증언을 반박하기 위한 동영상을 제작해 일본어, 영어, 한국어로 탑재하고 있다. 특히 하시마에 거주했던 주민들은 반복적으로 ‘조선인과 일본인이 사이좋게 지냈다, 하시마라는 가족적인 일체감을 갖고 있었다’는 증언을 통해 강제노동이나 차별을 부정하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관광지화와 옛 하시마 섬에 대한 향수와 향토애를 토대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러티브만 구사하고 있다.

2014년 이후 일본 우익들의 유엔 진출도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위안부의 진실 국민운동’ 국제역사논전연구소, 새로운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대표적인 우익단체들이 유엔의 인권 관련기관에서 일본에게 유리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올해 7월 제네바 총회석상에서 강제노동과 민족차별은 없었으며, 한국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발언한 낙성대연구소의 이우연을 데려간 것도 국제역사논전연구소였다. 일본은 정부와 민간 우익단체들이 전방위적으로 여론전을 펼치며 공세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항상 일본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국제적으로 사안이 터지면 뒤따라가면서 수동적으로 대응해 왔을 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매우 많은 유리한 카드를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 정부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에 끌려만 다니고 있다.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계기로 식민지배 책임과 강제노동 문제가 한일간의 역사갈등․경제갈등․군사갈등으로까지 확산되고 있고 장기화될 조짐이다. 따라서 강제동원 문제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민관 공동의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국제법과 국제사례를 조사하여 대응논리를 강화하고, 피해자료의 수집과 체계적인 정리 및 영어 등 외국어 번역을 통해 국제사회에 제공함으로써 지속적인 국제 여론전을 펼치며, 2020년 도쿄에 개설될 ‘정보센터’의 내용을 한일 공동으로 만들자고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 교섭을 해야 할 것이다.

김민철 경희대 교수,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yju82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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