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 이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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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광받는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 듀크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애리얼리 교수는 “내가 시 낭송을 할 텐데 돈 내고 들으러 올 사람 있냐?”라고 물었다.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신청을 했다. 학생들은 짧은 시 한 편 들을 때 1달러, 중간 길이의 시 한 편은 2달러, 긴 시 한편의 낭송을 들을 때에는 3달러까지 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애리얼리 교수는 저서『상식 밖의 경제학』에서 “내 목소리는 진짜 형편없는데요. 돈 내고 내 시 낭송을 들겠다는 학생이 꽤 있더라고요. 이거 잘하면 경제학 교수 때려치우고 시 낭송만으로도 먹고 살겠는데요?”라는 농담을 던졌다.

애리얼리 교수는 다른 학생들에게 다른 제안을 던졌다. “내가 시 낭송을 할 텐데 혹시 내가 돈을 주면 들어줄 사람 있냐?”고 말이다. 이번에도 꽤 많은 학생들이 자원했다. 학생들은 짧은 시를 들어주는 일에 1달러 30센트를 받겠다고 요청했고, 중간 길이의 시에는 2달러 70센트, 긴 시를 참고 들어주는 데에는 4달러 80센트를 요구했다.

하나하나 따로 들으면 그럴싸한 이야기인데, 이 두 이야기를 합쳐 들으니 진짜로 웃긴 일이 벌어졌다. 두 그룹의 학생들이 해야 할 일은 완벽하게 똑같다. 양쪽 다 애리얼리 교수가 구린 목소리로 시 낭송 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첫 번째 학생들은 돈을 내고, 두 번째 학생들은 돈을 받는다. 뭐 이런 웃긴 이야기가 다 있나?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인간은 예상 밖으로 상품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실 애리얼리의 시 낭송을 듣는 건 매우 힘든 노동이므로 당연히 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때로는 사람들이 그 시 낭송을 들으며 돈을 내기도 한다.

‘그렇기는 하네. 살짝 방심하면 만 원짜리 상품을 3만 원에 사는 바가지를 쓰잖아?’라고 간단히 생각한다면 아직도 방심하고 있는 거다. 이건 싼 걸 비싸게 사는 바가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돈을 받아야 하는 일에 되레 돈을 주는 황당한 일에 관한 이야기다.

주한미군과 생화학 물질

이 이론을 현실에 도입해보자. 우리나라에는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 국민들이 주한미군 주둔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에 드는 비용은 우리가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당연하지! 미군이 우리를 지켜주는 건데”라고 쉽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에서 살펴봤듯 사람들은 돈을 받아야 하는 일에 되레 돈을 내는 아둔한 행동을 저지른다.
2019년 12월 20일 주한미군이 부산항 미군부대에서 생화학 방어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사실 이 의혹은 오래 전부터 계속 제기돼 왔다.

『민중의소리』와『부산일보』,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2016년부터 주한미군이 생화학 물질을 부산에 몰래 들여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걸 2019년에야 주한미군이 인정했다.

▲ 2019년 12월 20일 생화학 실험실 논란과 관련해 주한미군과 국방부가 현장 설명회를 열었을 때 시민단체가 “현장 설명회가 아니라 철거 설명회를 하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2019년 12월 20일 생화학 실험실 논란과 관련해 주한미군과 국방부가 현장 설명회를 열었을 때 시민단체가 “현장 설명회가 아니라 철거 설명회를 하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부산에 들여왔다고 인정한 물질은 보툴리눔톡소이드, 포도상구균톡소이드, 리신 등이다. 이런 물질을 부산항 8부두 시설뿐 아니라 평택기지 등에도 보냈다. 그런데 보툴리눔톡소이드는 신경조직을 마비시키고 파괴하는 매우 강력한 특수물질이다. 1그램으로 무려 100만 명을 살상할 수 있다고 한다. 헉!

나는 정말로 궁금해 미치겠다. 이 위험한 물질을 한국에 왜 들여왔냐는 거다. 미군은 “화학 공격 방어를 위해서 들여온 것이고 매우 안전하기까지 하다”라고 설명했다. 1그램으로 100만 명을 살상하는 세균을 남의 나라에 몰래 들여놓고 안전하다고 말하면 그걸 누가 믿겠나? 그렇게 안전하면 그 보툴 어쩌고를 백악관에 들여놓고 실험하라. 방어시스템이라면서? 백악관부터 방어하는 게 미군의 기본 임무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는 절대 못하지? 왜 못할까? 안전하지 않으니까 못하는 거다.

미군은 우리를 돕고 있나?

나는 이 사실만 봐도 의심스럽다. 미군이 진짜로 우리를 돕고 있기는 하는 건가? 우리는 상당한 액수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내면서까지 미군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건가? 나는 진심으로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 위험한 세균을 제멋대로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일은 절대로 허용해 주면 안 된다. 그런데 백만의 하나, “돈만 벌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받아들여 이런 일을 허용해 줄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면 우리는 저런 세균을 우리나라에 들여와서 실험을 하는 일에 돈을 내야 하나? 돈을 받아야 하나? 당연히 받아야 한다. 최소한 30조 원쯤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돈을 받아도 모자랄 일에 지금까지 돈을 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그건 오버지”라고 단정하지 말자. 사람은 돈을 내야 하는 대목과 받아야 하는 대목을 구분하는 일에도 많은 착각을 저지른다. 

“주한미군을 당장 철수하자!”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친미주의자도 아니고 반미주의자도 아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주한미군이 주둔하더라도 그게 미국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인지, 우리가 당하는 일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하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설혹 당하더라도 알고 당하는 것과 “미국은 우리의 은인이어요. 미국 만세!”를 외치며 제대로 모르고 당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힘이 약해서 당하더라도 그 사실을 알면 이를 갈고 힘을 키운다.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한다. 나는 이 일을 겪으면서 미국이 우리에게 돈을 내고 부탁해야 될 일을, 우리에게 돈을 받고 거들먹거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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