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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에는 아직 이름이 없다”

기사승인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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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본부 2030청년역사기행단 참가 수기

   
▲ 경기본부 청년역사기행이 제주에서 열렸다.

섯알오름을 지나 붉어진 고사포 진지에 섰다. 석양은 점차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막 지나온 학살 터가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나는 이유도 모르고 죽어갔을 제주 사람의 마지막 날을 떠올렸다. 어느 어머니는 막 소년티를 벗은 앳된 청년의 시신을 부여안고 바람처럼 울었을 것이다. 오름을 내려오는 길에도 바람은 멎을 줄 몰랐다.

나는 지난달 24일 공무원노조 경기본부에서 진행하는 ‘2030청년역사기행단’ 1차 기행에 참가해 제주도로 향했다. 이번 기행에는 청년조합원 37명이 함께했다. 우리는 1박2일 동안 알뜨르 비행장, 일제강점기 고사포 진지, 북촌마을, 드틀굴 등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4·3에 대해 배웠다.

첫날 제주에 도착한 우리는 숙소 강의실에 앉아 제주 4·3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 기억 속에 4·3은 수험서에서 몇 페이지로 스쳐 간 역사일 뿐, 출제마저 안 되었다면 그것이 과연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제주공항에 발 디뎠을 때 내 인식은 그 정도였다. 활주로 아래에 가족 품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유해가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제주 4·3은 지금까지도 정명 작업이 진행 중이다. 수십 년이나 지났지만 제대로 된 이름이 없다. 학살, 항쟁, 무장봉기 등 여러 일이 갑작스레 일어난 탓이다. 살아남은 이들의 행보가 결정되기에 아픈 역사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일은 훨씬 조심스럽다.

고완순 할머니는 북촌 대학살의 생존자다. 군복 입은 남자들이 운동장에 동네 사람들을 몰아넣고 총을 쏘았더란다. 사람이 붉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어멍! 어멍!” 엄마를 찾아 부르짖는 어린 동생의 머리를 남자가 몽둥이로 후려쳤다. 어린 남동생은 곧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동백동산의 곶자왈 숲길로 향했다. 당시 빨치산으로 몰렸던 제주민들이 땅굴을 파고 숨어 살던 곳이었다. 가이드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가만히 서서 숲을 느껴보았다. 하루하루 숨죽이며 땅굴 속에 숨어 살다가, 밤이면 나와 밥을 지었을 제주 사람들. 자욱한 연기가 굴에 차오르는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시커먼 땅굴 안에서 사람들의 넋이 우짖는 듯했다. 4·3에는 아직 이름이 없다. 그들에게도 이름이 없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초목을 흔들었다. 나는 가슴이 수런거려 얼른 숲을 빠져나왔다. 정명 되지못한 슬픈 역사 제주 4·3. 언젠가 사건의 진실에 다다라, 비문 없는 백비도 스러져간 사람들도 진짜 이름과 의미를 되찾기를 바란다.

   
▲ 경기본부 청년역사기행이 제주에서 열렸다.
   
▲ 경기본부 청년역사기행 참가자들이 4.3기념관을 방문했다.

 

경기본부 포천시지부 이주헌 조합원 yju8283@hanmail.net

<저작권자 © 공무원U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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