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출신 민주노총 위원장과 역사의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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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2월 1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故 백기완 선생 영결식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2월 1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故 백기완 선생 영결식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나는 지난해 연말 실시됐던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투표권이 없는 노동자였기에 누구를 지지하고 말고 할 자격도 없었다. 사람들이 매우 신기하게 생각하는데, 내가 속한 언론사『민중의소리』에는 아직 노조가 없다.

그래서 먼저 이 글은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노선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의 문제도 아니다. 나는 출마했던 네 명의 후보 모두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분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의 주제는 민주노총을 3년 동안 이끌 새 위원장이 비정규직 출신 노동자라는 점이다. 나는 이 사실을 접하며 “우리 노동운동의 역사가 또 한 걸음 전진하는 구나”라고 홀로 감격했다.

역사의 발전이란 무엇인가?

“인류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다. 인류 발전의 역사는 도덕적 권리와 공감의 확대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도덕철학자 피터 싱어(Peter Albert David Singer)의 말이다.

질문을 던져보자. 역사의 발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이 심오하고 묵직한 질문에 대해 싱어의 대답보다 더 훌륭한 답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우체통으로 주고받던 편지가 카카오톡으로 변화한 것이 역사의 발전인가? 마부가 끌고 다니던 마차가 전기자동차로 변화한 것이 역사의 발전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조금은 편하게 해줄지언정, 그따위의 것을 두고 감히 인류 역사의 발전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싱어는 말한다. 인류의 발전이란 바로 도덕적 권리와 공감의 확대라고 말이다.

먼 옛날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온전히 왕의 몫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왕만이 누리던 그 도덕적 권리와 공감이 점차 귀족들에게로 옮겨갔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르면서 귀족들만 누리던 도덕적 권리와 공감이 시민들에게로 옮겨갔다. 한 명이 누리던 권리가 여러 사람에게 점차 확산되는 것, 이것이 바로 역사의 발전이다.

사람들은 지금 내가 누리는 권리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금 주말에 쉬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1935년 발간한 평론집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 도시 노동자들이 막 투표권을 따낸 직후였는데 몇몇 공휴일이 법으로 정해지자 상류층에서 대단히 분개했다. 나는 한 늙은 공작부인이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가난뱅이들이 휴일에 뭘 한다는 거지? 그 사람들은 일을 해야 한다고”

불과 86년 전의 이야기다. 노동자들이 공휴일에 쉬려고 하면 귀족들은 “가난뱅이들이 쉬긴 뭘 쉬어”라며 경멸했다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휴식의 권리는 자본가들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이 권리가 노동자들에게 점차 옮겨져 지금 우리가 주말에 휴식을 취한다. 싱어는 이것을 바로 역사의 진보라고 표현한다.

 

도덕적 권리와 공감의 끝없는 확대

5월 1일 노동절에 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가? 이것도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노동절의 기원은 1886년 미국 총파업이었는데, 이 파업에 무려 34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했고 그 중 8명이 사형을 당했다. 노동절에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이유는 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목숨 위에 그날 휴식을 취한다.

선거 당일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가? 이 역시 그럴 리가 없다. 선거권이 일반 시민들에게 주어진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일이다. 성공한 혁명이기에 민중들의 희생이 적었을 것 같은가? 혁명 당시 총 50만 명 이상이 죽었고 기요틴에서 처형된 사람 숫자만도 4만 명이 넘었는데 희생자들 중 80% 이상은 평민이었다. 우리의 투표권은 그 수십 만 명의 목숨 위에서 행사되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시민들은 모두 투표권을 갖게 됐을까?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대혁명 이후 투표권은 성인 ‘남성’에게만 주어졌다. 유럽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고작 100여 년 전의 일이다.

민주주의의 본토를 자랑하는 영국에서는 1928년에야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됐다. 그런데 이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여성 운동가들이 투쟁을 거듭했고, 구금을 당한 운동가들은 단식투쟁을 감행했다. 자칭 ‘신사의 나라’ 영국은 단식 투쟁을 벌이는 여성 운동가들의 입에 호스를 꽂아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날 우리가 온 가족이 평화롭게 투표를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들의 목숨을 건 처절한 투쟁이 있었다. 이처럼 왕만 누리던 권리가 귀족에게, 귀족들만 누리던 권리가 시민에게, 남자들만 누리던 권리가 여성에게로 점차 확장된다. 우리는 이 위대한 여정을 기꺼이 ‘역사의 발전’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지 어언 200년, 자본의 통제 기술은 보다 교묘해졌다.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 노동자들끼리 치고받는 세상을 설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설계는 꽤 성공적으로 작동한다. 사회 곳곳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를 거부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소용없다. 우리는 현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는 증명한다. 왕만이 누리던 권리가 귀족과 시민에게로 옮겨왔듯이, 정규직만이 누리던 권리는 비정규직으로 옮겨질 것이다. 우리는 이 권리의 이전을 뜨겁게 지지할 것이다. 다가올 미래에 노동자들은 보다 평등할 것이고, 우리는 노동자의 연대를 단호히 복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발전이다. 그래서 100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의 수장으로 마침내 비정규직 노동자가 당선된 것은 무엇보다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우리의 노동운동은 이렇게 역사 속에서 한 발자국씩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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