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화론과 수평폭력,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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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에서 총격 살해 사건이 벌어졌다. 21세 백인 남성이 총기로 8명을 살해했는데, 희생자 중 6명이 아시안 여성이었다. 용의자는 “아시아인을 모두 죽이겠다”고 외치며 총기를 난사했다.

하지만 사건 직후 인터뷰에서 경찰이 가해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공식 브리핑에서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성 중독을 앓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혐오범죄가 아닌 우발적 범죄라는 것이다. 미국 경찰과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하여 그 어떤 국가 공권력도 이것이 혐오범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뿌리 깊은 제국주의, 인종주의의 역사가 있다. 미국의 역사는, 아메리칸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미국을 세운 유럽계 백인 이민자들이 원주민, 흑인, 유색인종을 멸시하고 차별‧억압해온 역사이다.

아시안에 대한 유럽계 백인 이민자들의 멸시와 차별은 옐로 페릴(Yellow Peril, 황화론) 현상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황화론은 청일전쟁 말기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내세운 모략에서 기원한다. 앞으로 황색 인종이 서구의 백인 사회를 위협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음모론으로, 황색 인종을 배척‧억압하기 위하여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이다.

특정 국가나 특정 인종에 대해 적대감을 퍼뜨리고 혐오감을 부추기면서 낙인과 배제를 조장하는 것은 혐오범죄이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1965.12.21.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유엔 협약)은 인종주의 전파·인종적 증오 고취·특정 인종에 대한 폭력행동 선동을 금지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협약을 가장 무색하게 만드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 사회의 민낯은 잔인한 인종차별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미국 경찰이 자행한 인종차별의 폭력은 충격적이었다.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질식사한 조지 플로이드, 집에서 자다가 경찰의 총을 여섯 발 맞은 브레오나 테일러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결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항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정부가 통금령을 내렸지만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알제리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은 인종차별을 정당화했다. “선천적으로 저열하고 폭력적이며, 이유 없이 살인하고 범죄 성향이 강하다. 깜둥이들은 원래 폭력적이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알제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1925.7.20.~1961.

12.6.)은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알제리 민중들이 폭력적인 이유는 바로 프랑스인들이 가하는 수직폭력 때문이다”고 반박했다.

파농은 폭력을 수평폭력과 수직폭력으로 구분한다. 지배계급이 피지배 계급에게 행하는 폭력, 다시 말해 갑이 을에게 행사하는 폭력이 수직폭력이며, 이와 달리 을들끼리 행하는 폭력을 수평폭력이라고 정의했다. 파농은 말한다. “인간은 수직폭력으로부터 피해를 크게 입을수록, 수평폭력의 유혹에 빠진다. 자신을 곤궁한 처지로 몰아넣은 것은 지배계급이지만, 정작 그 일을 당한 민중들은 자기보다 못하거나 약한 사람을 죽이고 두들겨 패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한과 고통을 푸는 것이다.”

인종차별의 수평폭력에서 우리는 예외일까? 한국에는 이주노동자·결혼이주민·동포·유학생 등 200만명이 넘는 이주민이 상주한다. 가장 많은 이주민 집단인 중국인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심각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수구 세력들은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발원했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주장에 동조했을 뿐 아니라 ‘우한 폐렴’이라고 하면서 중국인 혐오 조장을 위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수구 언론과 저질 정치인들은 ‘짱깨’, ‘중국인은 바이러스’ 등의 자극적인 중국인 혐오 표현을 남발했으며, 급기야 ‘중국인 출입 금지’를 내건 가게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애틀랜타 총기 사건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하여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반감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거나 별 문제의식이 없는 건 아닌가?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 등 자치단체가 이주 노동자들에게만 의무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으라는 조치를 취해도 그것이 차별이라는 것조차 모른 채 무감각하지 않은가? 분명하고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비한국계 집단에 대해 매우 배타적인 사회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우리 사회에서 배외주의 현상이 심해진 건 맞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배외주의도 뿌리가 깊다. 돌아보면 한국 사회에는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 출신들은 폄하하고 무시하면서도 미국과 유럽의 서양인에 대해서는 동경하고 호감을 표시하는 현상이 흔하다. 서양인의 우월성을 칭송하며 동양인을 근거 없이 비하하기도 한다. ‘태극기 부대’가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드는 데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민낯이 드러난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는 아시안이 무능하고 게으르며 서양인보다 열등하다고 규정한다. 야만의 동양인에게 서양의 선진 문화를 전파하여 동양을 구원했다면서 자신들의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한다.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과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다. 문제는 우리의 의식에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이다. 서구에 대한 사대주의와 자기 비하의 열등감으로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 말이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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