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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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국제노총(ITUC)은 전 세계 151개국 국가별 노동조합 305개, 노동자 1억7500만 명이 가입되어 활동하는 세계 최대 노동조합 단체이다. 국제노총은 2014년부터 해마다 ‘글로벌 노동권 지수’(Global Rights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국제노총은 노동권 지수를 6개 등급으로 나눈다. △노동권이 가끔 침해되는 나라(1등급) △노동권이 반복 침해되는 나라(2등급) △노동권이 정기적으로 침해되는 나라(3등급) △노동권이 체계적으로 침해되는 나라(4등급) △법·제도에서 노동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나라(5등급) △전시 상황처럼 사실상 정부 기능이 마비돼 평가 자체가 무의미한 나라(5+등급)다.

우리나라는 올해도 5등급을 받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동권이 최하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38개국 중에서 5등급을 받은 나라는 한국·콜롬비아·터키 세 나라다. (일본 2등급, 영국 3등급, 미국 4등급) 국제노총이 노동권 지수를 처음 발표한 이래로 한국은 한 번도 5등급을 벗어난 적이 없다. 부끄러운 ‘노동 후진국’의 기록이다.

헌법 제33조에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왜 노동 후진국일까. 헌법적 권리 행사를 촉진하기는커녕 거꾸로 권리 행사를 억압하는 규정이 수두룩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때문이다. “노조법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헌법 제33조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으로 규율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조법의 문제가 심각하다.” 2016년 한국의 국제노동기구 가입 25주년,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20주년을 기념하는 토론회에서 현 대법관인 김선수 당시 변호사가 내린 진단이다.

대한민국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의 행사를 극도로 제약하는 노조법으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조 할 권리를 사실상 박탈당하고 있으며, 진짜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나라다. 또한 교사·공무원에게는 단체행동권과 정치기본권이 없고, 파업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해고를 포함한 징계·형사처벌·손배가압류를 각오해야 하며, 성별 임금격차 부동의 1위 국가다. 게다가 이젠 코로나19를 핑계로 생존권을 요구하는 집회·시위의 자유마저 억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재 왕국’이라는 오명을 듣는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산재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망자 수는 2천62명이며, 이 중 882명이 사고로 숨졌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간한 OECD국가 산재 사망사고 실태 비교·분석보고서를 보면, 2017년 기준 건설산업 노동자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는 한국이 OECD 평균 8.29의 세 배 이상인 25.45로 가장 높았다. 전체 산업 노동자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도 3.61로 38개 회원국 평균 2.43을 훌쩍 뛰어넘었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가 우리 노동자에게 언제까지 ‘희망 고문’이어야 할까. 노동자는 먹고살기 위하여 현장으로 출근한다. 그런데 살기 위하여 일하러 출근한 뒤 퇴근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는 노동자가 1년에 2천 명이 넘는다.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가 3.98명이다. 그런데, 방역 당국이 발표한 2020년 코로나19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 이래 12월 31일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는 총 900명이다. 10만 명당 사망자 수는 1.74명이다. 산재 사망자 위험이 2배 이상 높다.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이 ILO사무총장 출마를 선언했다.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이 ILO사무총장 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지난 1일 뜬금없는 보도가 나왔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뉴스였다.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강 전 장관이 당선되면 한국이 ‘노동 선진국’으로 위상을 강화할 기회이며, 아시아 최초이자 첫 여성 ILO 사무총장이 탄생”한다면서 “범부처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강 전 장관의 입후보 활동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 전 장관의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 선거출마는 가당치 않고 주제넘은 일이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노동권 지수 최하 등급의 ‘노동 후진국’으로 평가받는다. 눈 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어디다 대고 ‘노동 선진국’ 타령인가. 정부가 내세우는 ‘아시아 최초이자 첫 여성’이라는 타이틀도 무색하다. 강 전 장관이 아시아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향상에 무슨 기여를 한 게 있다고 그런 호칭을 갖다 붙인단 말인가.

강 전 장관은 “관련 부처 및 국회와 함께 ILO 핵심협약 비준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약력을 소개했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작년에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에 따라 개정된 노조법은 여전히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지 않아 국제 기준에 위반된다. 또한 정부는 강제노동 폐지 협약이 국가보안법과 상충된다는 이유로 비준을 미루고 있다. 이게 팩트인데 거짓말을 하고 있다. 강 전 장관이 사무총장직에 입후보하는 건 자유지만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하며, 최소한 한국이 국제 기준부터 준수하는 게 기본 아닌가.

강 전 장관을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시키는 걸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참 후안무치하다는 걸 새삼 절감한다. 지난달 2일 새벽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해 양경수 위원장을 체포·구속한 이 정부가 ‘노동 선진국’ 운운하다니, 철면피하기 짝이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그 어떤 독재 정권이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빌미로 집회를 금지하고 제1노총의 위원장을 구속한 사례가 있단 말인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의 ‘평화로운 집회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한 특별 성명’은 “국가는 코로나19 위험 대응을 이유로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막아선 안 된다”고 천명하고 있다. 염치가 있다면 강 전 장관은 입후보를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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