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 사태, 자유무역과 시장 숭배자들은 그 입을 닥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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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7일 새벽,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있는 중곡119안전센터에 시민이 기부한 요소수
▲ 11월 7일 새벽,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있는 중곡119안전센터에 시민이 기부한 요소수

디젤 차량의 질소산화물 저감장치(SCR)에 쓰는 요소수 부족 사태가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혼란을 이어가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화물 차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디젤 차량의 운행이 어려워져 물류 대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이에 관해 “정부가 왜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하느냐?”고 질타하는 언론의 목소리가 들린다. 뒷북행정이니, 실효성 없는 대책이니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새삼 자유무역과 시장을 숭배하는 자들의 이중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언제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 정부는 제발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더니….

 

시장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시장주의자들은 ‘특정 제품의 공급이 부족하면 → 제품 가격이 오르고 →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다시 늘어나 → 수요와 공급이 다시 일치하고 가격은 안정 된다’는 단순한 논리를 무려 200년 동안이나 펼쳤다. 그런데 정말 그랬냐고? 시장에 맡겼더니 요소수 부족 사태가 벌어졌고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공급이 다시 늘어나기는커녕 매점매석이 판을 쳤다.

“자유무역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는 시장주의자들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FTA(자유무역협정)로 대변되는 자유무역 분업체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들이 설계한 것이다. 그들은 시장경제의 우월함을 앞세워 자유무역에 근거한 분업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무역 시스템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요소수 사태는 바로 자유무역의 설계자인 강대국들의 무역 분쟁으로 촉발된 것이다. 사태의 발단은 미·중 무역 분쟁이었다. 두 나라의 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 편에 서자 중국이 보복 조치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석탄 수입을 중단했다. 이 때문에 세계 최대 석탄 소비국인 중국에서 석탄 부족 사태가 벌어졌고 석탄을 원료로 삼는 요소도 품귀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이 자유무역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체계를 무너뜨린 셈이다.

내가 시장주의자들을 경멸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이들은 평소에는 시장이 만능이라고 주장하더니 요소수 사태 같은 일이 벌어지면 시장을 탓하는 게 아니라 정부를 탓한다.

그러다가 사태가 끝나면 이들의 태도는 다시 돌변한다. “복지제도를 확충해 빈곤층의 삶을 개선하자”고 주장하면 “정부가 왜 자꾸 시장에 개입하느냐”며 게거품을 무는 것이다. 지금 장난하나? 빈곤으로 국민의 삶이 위협받는 것이 요소수 사태보다 덜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않나?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자들은 서구의 금융자본과 한국의 재벌들이다. 그런데 걔들? 국가의 보호가 없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없었다.

생각해보자. 정부의 비호가 없었다면 한국 재벌들이 시장에서 자기 힘으로 저렇게 성장할 수 있었겠나? 정주영이 1972년 만든 포니 자동차가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했다면 성공했을까?

웃기는 이야기다. 그 허접한 포니로 미국과 독일,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과 시장에서 경쟁했다면 현대자동차는 1년도 못 버티고 망했다. 그들의 성공 뒤편에는 정부의 비호가 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재벌들이 박정희-전두환 시절에 그렇게 정경유착에 집착했던 거 아닌가?

제정신 못 차리고 문어발 확장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IMF)를 맞았을 때 구제금융에 들어간 돈은 누가 댄 건가? 전부 국민의 세금이었다.

위기에 처하면 “국가가 우리를 보호해줘야지”라고 구걸을 하는 게 이자들의 특기인데, 구걸하는 태도가 너무 당당해서 어이가 없다. 그래서 죽어가던 기업을 공적자금으로 살려놓은 뒤 국가가 죽어가는 민중들을 좀 살려보겠다면 “시장에 맡기라니까! 왜 세금을 허투루 쓰는 거야?”라며 발악을 한다. 이들에게는 염치라는 것이 없다.

 

정부의 비호로 살아남은 자들, 그 입을 닥쳐라

이런 뻔뻔함은 자본의 종족 특성이다. 금융자본의 탐욕으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졌을 때, 미국 정부가 수조 원에 이르는 구제금융과 수경 원에 이르는 달러를 퍼붓지 않았다면 걔들은 다 망했다. 미국 정부가 찍어낸 수경 원의 달러는 전 세계 민중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국가의 혜택을 입어서 살아남은 자들이 걸핏하면 국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며 신자유주의 깃발을 휘두른다. 말종도 이런 말종들이 없다.

그래서 유럽을 대표하는 진보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는 자본의 이중성을 이렇게 질타한다.

“국가권력 없이 개인의 이윤과 시장경제는 전혀 가능하지 않았다. 국가는 운하를 건설하고 실업자들을 구제했다. 병원을 짓고 보건계획을 세워 전염병을 퇴치했다. 자본가들에게 양질의 노동자를 공급하기 위해 미래의 노동자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학교도 세웠다. 국가는 시장경제를 안정화했다.

그렇게 부(富)는 노동자, 발명가, 국가공무원과 기업가에 의해 함께 생산되었지만, 그 열매는 가장 힘 있는 개인들의 손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국가가 세금을 통해 자신들의 부를 빼앗아 간다고 국가를 원망한다. 그러면서 국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 한다.”

그 어떤 재벌도, 그 어떤 금융자본도, 그 어떤 부동산 갑부도 국가가 산업화를 주도하고, 전염병을 치료하고, 학교를 세우고, 도로를 놓고, 그들이 어려웠을 때 구제금융을 퍼부어주지 않았으면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혜택을 입은 자들이 걸핏하면 정부의 기능을 폄훼하고 세금을 줄이라고 난동을 부린다.

나는 부디 정부가 이번 요소수 사태를 잘 해결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그런 소망과 별개로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의 기능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장 만능론을 외치는 시장주의자들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바루파키스의 말처럼 저들은 필요할 때만 국가를 이용한다.

단언컨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이 아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국민의 삶과 건강, 생명과 안전을 진정으로 위하는 공공성으로 무장한 정부와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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