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항쟁, 책이나 영상으로만 보았던 낯선 역사의 현장.
지부에서 역사기행을 간다는 소식에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참석해 드디어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역사라고 썼지만 불과 42년 전 일어났던 일이었음에, 사실 내 직장동료의 가족 그리고 선배가 직접 겪어온 현재까지 이어지는 아픔이란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5‧18민주묘지에 도착했을 때, 전국 각지에서 모인 공무원노조 조합원들과 본부‧지부 깃발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웅장한 기세에 전율이 흘렀다. 하지만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는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의 펄럭임뿐, 그것이 곧 엄숙한 참가자들의 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민주의문’을 통해 민주묘지에 들어가 공무원노조 합동참배를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장내에 울려 퍼지고 공무원노조 깃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차분하게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무겁고 진지한 마음으로 참배를 한 뒤 묘역을 둘러 봤다. 울컥 화가 치민다. “과연 누가 이 많은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부터 초등학생의 나이에 무고하게 희생된 분까지 한 분 한 분의 사연이 마음에 아프게 박혔다.
공무원노조 합동참배와 간단한 결의대회를 위해 ‘구묘역’에 가기 위해 ‘역사의 문’을 지나 언덕을 올랐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온 산을 빼곡히 채운 민주열사의 묘비가 그날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마음은 무거웠지만, 함께 투쟁을 결의하면서 함께한 동지들 덕분에 든든했고, 나 역시 역사의 한 장을 함께 쓰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가볍게 떠난 광주로의 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청년조합원들과 함께 5‧18민중항쟁 역사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광주의 정신을 온 마음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의 인생이 공무원노조와 함께 더욱 의미 있는 나날로 채워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