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용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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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에서 독자 핵무장론, 전술핵 재배치론, 미국 전술핵 공유론 등 다양한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여당 지도부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 등을 주장하고, 윤석열 대통령도 이에 동조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질문에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했다. 13일에도 ‘미국에 실질적 핵 공유를 요청했다’는 <조선일보> 보도와 관련한 질문에 “지금 우리 국내와 미국 조야에 확장억제 관련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데 잘 경청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있다”고 답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북한에 의해 휴지조각이 됐다. 결단의 순간이 왔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문재인 정부 시절 9.19 군사합의는 물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파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도 가세했다. 김기현 의원은 “평화를 지키려면 북핵과 동등한 핵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핵을 제외한 다른 어떤 논의도 현실 회피와 눈속임일 뿐”이라면서 핵무장론을 역설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오랫동안 강조했듯이 우리도 게임체인저(game changer)를 가져야만 한다. 힘이 있어야 진정한 평화를 지킬 수 있다”면서 미군 전술핵 재배치 및 핵 공유 등을 주장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다. 핵무장 주장은 한마디로 황당무계한 코미디에 불과하다. 대표적으로 독자적 핵 개발을 통한 핵무장론은 무식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왜 그런가? 한국은 NPT(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 회원국이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남수단, 북한 등 5개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국가가 NPT 회원국) 이 조약 제9조 3항은 “본 조약상 핵무기 보유국이란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무기 또는 기타의 핵폭발 장치를 제조하고 폭발한 국가를 말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에 따라 NPT에서 핵 보유를 공인받은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5개 나라뿐이며, 이들 나라 외에는 핵 보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은 NPT 회원국이 아니며, 이 4개국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불린다.)

독자 핵무장론은 한국이 NPT를 탈퇴하여 독자 핵 개발을 하자는 주장이다. 이론상으로는, 한국이 NPT를 탈퇴하고 나머지 NPT 회원국들이 한국을 조약 외 국가로 인정하면 핵실험과 핵무기 보유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게 가능성이 1이라도 있는가? 북한의 사례를 보면 자명해진다. 북은 1985년 12월 12일 NPT에 가입했다가, 1993년 3월 12일 탈퇴 선언과 유보 후, 2003년 1월 10일 재탈퇴를 선언했다. 그 결과 북은 핵실험과 핵무장에 대해 온갖 제재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핵보유국들이 한국의 NPT 탈퇴를 예외로 인정할 가능성이 있는가? 전혀 없다.

독자적 핵무장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은 미국의 눈치 보지 말고 NPT를 과감히 탈퇴해 핵 개발과 핵무장을 하자”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가? 그리고 NPT 탈퇴와 국제적 제재에 따른 그 뒷감당을 할 만한 자신과 배짱이 있는가?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전체 수출입총액을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수치인 무역의존도는 59.83%에 달한다. 주요 20개국(G20) 중 독일(67.03%)에 이어 무역의존도 2위 국가다.

미국 전술핵의 재배치론 역시 무식하긴 마찬가지다. 국제법적으로 미국은 한국에 핵무기를 제공할 수 없다. 미국의 전술핵은 1991년까지 한반도에 배치돼 있었다. 하지만 그해 7월 미국과 소련이 핵 감축 조약(START)에 합의했고, 미국은 9월 ‘대통령 핵 구상’에 따라 해외에 배치된 전술핵 파기와 감축을 선언하고 한국에서 핵무기를 철수했다. 이에 맞춰 당시 노태우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하고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또한, 미국 핵무기의 한국 배치는 NPT의 핵무기 비확산을 어기는 것이다. NPT 제1조 핵무기의 직간접적 양도 금지와 제2조 핵무기의 직간접적 양수 금지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미소 간 조약과 NPT 조약을 어기고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할 가능성이 있는가? 전혀 없다. NPT를 주도하는 미국이 조약의 파기를 감수하고 한국만 예외로 봐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치 어떤 가능성이 있기라도 하는 양 떠드는 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무식한가를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전술핵 공동운용론 역시 전혀 현실성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핵무기를 공동운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핵전력의 운용을 다른 나라와 협의하여 결정하는 나라는 없다. 핵무기의 사용 결정권을 다른 나라와 공유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식 핵 공유? 그것도 알고 보면 온전한 공유가 아니다. 최종 결정권은 미국 대통령이 갖고 있다. NATO의 연합 군사작전을 위한 최고사령부인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역대 최고사령관은 미군 장성이 맡고 있다. 그러니, 제발 무식한 소리 좀 그만하자. 부끄럽지도 않나?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이 무식한 주장을 함부로 떠벌리는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실로 허망한 건,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들에 대해 일일이 따지는 일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군사주권이 없기 때문이다. 군사주권도 없는데, 설령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군사주권도 없으면서 핵무장론을 떠드는 건 가당찮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지나가는 소가 비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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