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황진규 지회장 (소방본부 서울소방지부 119특수구조단지회)

‘고맙다’ 한 마디면 충분 … “앞으로도 기꺼이 남을 위한 삶 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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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2일 서울 을지로에서 열린 공무원노동자 총궐기대회에서 전국 무대에 얼굴을 알린 사람이 있다. 10.29 이태원참사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겪은 그날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밝히면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절규하듯 외친 그 사람, 공무원노조 서울소방지부 119특수구조단지회장 황진규를 만났다.

황진규는 1970년생, 올해로 쉰셋이다. 특전사로 군복무 중,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대형 참사에서 헌신하던 소방관을 언론에서 보고 묘한 매력에 빠졌다. 군 전역 후 우연한 기회에 아는 사람이 특전사 출신 소방공무원 특채에 도전해 볼 것을 제안했고, ‘운명처럼’ 그는 소방관의 길에 들어섰다.

심성 자체가 순하고 남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성향을 가진 황진규에게 소방관이란 직업이 꽤 잘 맞았다. 구조대로서 첫 출동은 기계식 주차장의 차량추락 사고. 27년 경력의 구조대원에게 수도 없이 지나간 끔찍하고 아픈 현장에 비하면 다행(?)이었다. 그동안 그는 현장에서 숱한 죽음과 마주했다. 두려움보다는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는 마음으로 고인의 고통을 헤아리며 그는 언제나 안타까움에 떨며 진심으로 애도를 표했다.

그렇다고 구조현장이 언제나 보람찬 것만은 아니었다.

술에 취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꿔 달라’, ‘빌라 앞 비둘기를 쫓아 달라’ 등 별의별 요구도 많았다. 김이 새는 일이 허다했지만, 그래도 그것 역시 국민의 삶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하겠다는 마음으로 오늘까지 왔다. 그저 ‘한 생명이라도 안전하다면...’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바람이고 기도다.

밤낮이 바뀐 채, 휴일도 명절도 없이 가족과 저녁 밥상을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황진규는 8년 후면 맞을 퇴직 후 삶 또한 ‘봉사’로 정했다. 남을 위한 삶이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알기에 그는 사회를 위해 조금이나마 헌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천성대로 남을 위해 살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사실 소방관은 남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내 목숨을 내놓는 사람이다.

황진규도 크고 작은 사고현장에서 생사의 여러 고비를 넘겼다. 산악구조 10년 세월 동안 허리와 무릎은 한겨울에 수건을 감싸야 잠을 청할 수 있게 망가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모텔 화재 현장에서 7층에 쓰러진 100kg 거구의 남자를 엎고 내려와 살렸고, 도림천이 범람해 고립된 노숙인을 목숨걸고 구조한 경험도 있다. 죽을 고비를 넘겨도 그날 저녁 동료와 소주 한 잔 털어놓고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그러다 혹여나 그를 찾아오거나 편지로 “고맙습니다!” 한 마디 해 줄 때면 황진규는 오히려 자신이 더 고마워 고개를 숙였다. 소방관으로 살면서 가장 벅찬 순간이었고, 그의 존재이유였기 때문.

 
 

황진규는 작년 7월 소방노조가 출범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소방지부가 공무원노조 식구가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지만, 노동현장을 바꾸는 데는 반드시 ‘연대’가 필요함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현장에 출동해 온갖 고생을 하고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이 수사대상에 오르는 데 그는 분노했다. 집회 현장에서 후배들을 대신해 그는 절규했다. 황진규는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아마 하위직 소방관들이 무더기로 연행되어 구속됐을 거란다. 소방관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부당함에 맞서 항의하면서 ‘소방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 또한 노동조합의 힘이라 믿는다.

 
 

황진규는 지금 수상구조대로 활동하고 있다.

한강에 투신하는 목숨을 살리기 위해 매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젊은이의 투신이 잦아 안타까움이 크다. 그는 “나는 투신한 사람을 살릴 수는 있지만, 투신 원인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면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 꼬집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또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구조가 만들어져 더는 출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매일을 사는 사람, 그래서 후배들과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동조합 활동에 기꺼이 발을 디딘 사람 황진규 지회장. 그는 화재나 수몰현장 등 큰 사고현장에서 만난 가난하고 약한 서민들의 죽음을 잊지 못한다. 힘들지만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는 노동자, 민중이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게 그는 언제나 보탬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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