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전쟁과 학살이 끝나지 않는 이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부권 행사하는 유엔 주재 미국대사
거부권 행사하는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건부는 12월 2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지난 10월 7일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에서 2만 명 이상이 숨졌다고 밝혔다. 사망자의 약 70%는 어린이(8천명 이상)와 여성(6천200명)이다. 의료진 310명과 언론인 97명도 사망자에 포함됐다. 부상자는 5만2천600여명으로 집계했다. 가자지구 의료진은 실종자나 병원으로 이송되지 않는 시신을 고려하면 사망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종자는 6천700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은 파괴된 건물 잔해 속에 묻혀있거나 생사를 알 수 없다.

최소 사망자 2만 명은 가자지구 전체 인구 220만 명의 1%에 육박한다. 1주일간의 임시 휴전 기간을 제외하면 하루 평균 300명 가까운 사람이 숨졌다. 참혹하지 않은 전쟁이란 없지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참상은 너무나 심각하다. 2년 가까이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최소 1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유엔이 추정한 수치와 비교해도 두 달 넘은 가자지구에서의 학살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더 이상의 무고하고 끔찍한 희생과 학살을 막기 위해 즉각 전쟁을 중단시켜야 한다.

12일 오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제10차 유엔 긴급특별총회(ESS)에서 아랍·이슬람권이 제안한 즉각적인 인도주의 휴전 요구 결의안이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반대에도 79.2%의 압도적 다수 찬성으로 통과됐다. 투표에 참가한 193개 회원국 가운데 153개국이 찬성하고 23개국이 기권했으며, 반대한 나라는 이스라엘과 미국 등 10개국에 지나지 않았다. 이른바 서방 선진 7개국(G7)에서도 프랑스와 일본, 캐나다가 찬성표를 던졌고, 미국-영국-호주로 구성된 오커스(AUKUS) 삼각군사동맹의 일원인 호주도 찬성으로 돌아섰다. 한국도 처음으로 찬성표를 행사했다.

이번 결의안에는 즉각적인 휴전과 무조건적인 인질 석방,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 보장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결의안은 “가자지구의 재앙적인 인도주의 상황과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고통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모든 전쟁 당사자가 민간인 보호와 관련해 국제인도법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10월 통과된 결의안보다 표현 수위가 강해졌다. 미국과 오스트리아가 집요하게 주장했지만, 하마스의 테러 행위에 대한 규탄은 결의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10월 27일 유엔총회 결의안 표결 당시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당시 결의안은 ‘일시 휴전’이란 최소한의 내용을 담았는데도, 찬성 120, 반대 14, 기권 45의 결과가 나왔었다. 지난 10월 표결에서 기권했던 25개국 이상이 한 달 보름 남짓 사이에 휴전 지지로 돌아섰다.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학살로 민간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데 대해 세계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AP통신은 이번 결의안이 큰 표 차로 통과된 것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미 CNN도 “이는 유엔 안보리에서 휴전 촉구 결의안을 거듭 반대해온 미국에 대한 질책”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52년 만에 비상대권인 유엔 헌장 99조를 발동해 12월 8일 안전보장이사회 특별회의를 소집했다. 안보리 회의에서 아랍에미리트(UAE)가 제안한 즉각적인 휴전 촉구 결의안이 15개 이사국 중 13개국의 찬성을 얻었다. 그러나 100개국이 지지 서명까지 한 결의안은 5개 상임이사국 중 유일하게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통과되지 못했다.

유엔은 지난 10월에도 ‘일시적 교전 중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에서 부결되자, 총회를 열어 이를 통과시킨 바 있다. 주지하듯이 유엔총회 결의안은 안보리 결의안과 달리 구속력이 없다. 팔레스타인 전쟁과 학살을 중단시키려면 유엔 안보리 결의와 국제 제재를 통해 이스라엘을 고립 압박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안보리 결의안이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14일 “미국에게 정전(휴전)을 실현시킬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4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가자지구의 도살자”라 규탄한 바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의 전화 협의에서 “미국은 항구적으로 정전을 조기에 실현시킬 책임이 있다”면서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철회하면 정전은 금방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는 12월 20일 가자 지구에서 전투를 중단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투표에 부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또 투표를 미뤄 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표결이 미뤄졌다. 안보리 이사국들은 표결을 앞두고 비공개 협의를 통해 결의안과 관련한 의견 조정을 시도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이미 두 번이나 결의안 표결을 연기한 바 있어 이번 연기로 일주일 동안 무려 세 차례 연기가 이뤄진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일부 외교관들이 미국의 반복되는 연기 요청에 좌절하는 동시에 결의안 표결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 가자지구에선 매일 300명이 죽어가고 있다. 이 참혹한 살상과 야만적 전쟁의 배후가 어느 나라인가가 세계만방에 드러나고 있다. 팔레스타인 전쟁과 학살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만 반대하지 않으면 전쟁 중단과 인도주의적 지원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바로 통과될 수 있다. 미국이 문제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공무원U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주요기사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