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의 차벽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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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집회를 차단하기 위해 세워진 차벽
▲ 광화문집회를 차단하기 위해 세워진 차벽

야당이 제 역할을 해야 여당이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 않고 긴장하고 분발하는 법이다. 이른바 ‘메기 효과’다. 수조에 미꾸라지의 천적인 메기를 집어넣으면 미꾸라지가 더 활발하고 건강해진다는 설이다.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의 의석을 더하면 전체 의석의 94%다. 역대 최고치다. 진보정당의 정치적 존재감은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이후 가장 약해졌다. 20대 국회에서만 해도 진보정당과 소수 야당들이 4+1체제에서 나름대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일부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패스트트랙이 가능한 절대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굳이 진보정당과 공조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21대 국회에서 소수 정당들은 원내 영향력이 무시해도 될 만큼 미미한 수준이며, 국민의힘이 야당의 지위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그런데 다 알다시피 국민의힘은 낡은 과거 정당으로서 수구적이며 반동적이다. 미래로 전진하기 위한 대안 제시를 통해서 지지를 얻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집권 여당의 실책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노리는 복고주의 세력이다. 

그들은 김종인 비대위체제에서 당명을 개정하고 당 마크를 바꾸면서 개혁 코스프레를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땅에 떨어진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위장 기만술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삼척동자도 다 안다. 국민의힘에게 건강한 야당으로서의 정치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수구적이고 반동적인 복고주의 야당은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여당을 긴장시키고 분발하게 만드는 순기능이 아니라, 되레 개혁의 후퇴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역기능의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8·15광화문집회다. 부동산 폭등으로 민심이 들끓어 문재인 정부가 궁지에 몰려있던 차에 수구반동 세력들이 8·15광화문집회를 강행하여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자 정부는 마치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잽싸게 ‘K-방역’으로 프레임을 전환하여 정치적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민주당에게 국민의힘 같은 수구반동 세력은 위기 탈출의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민주당이 야당 복을 타고 났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8·15광화문집회를 기화로 아예 광화문 광장을 경찰차벽으로 봉쇄해 버렸다. 촛불항쟁의 광장에 차벽이 등장하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 스스로 ‘2017 세계시민상’ 수상 소감에서, “이 상을 지난겨울 내내 추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대한민국 국민들께 바치고 싶다”며 “촛불정신을 계승하라는 국민의 열망을 담고 대통령이 되었다”(2017.9.19.)라고 자임하지 않았던가.

광화문 광장은 민주주의와 촛불항쟁의 해방 공간이다. 반면에 ‘명박산성’으로 기억되는 ‘경찰차벽’은 불통과 압제의 구시대 유물이다. 광화문 광장을 경찰차벽으로 봉쇄한 명분은 코로나19 방역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차벽 봉쇄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2011년 6월, 서울광장 차벽 봉쇄에 대해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며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69조의 대통령 취임 선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한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K-방역을 위해서라면, 헌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가?’

우리의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아로새겨진 차벽은 ‘명박산성’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를 막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광화문 세종로에 컨테이너 박스를 2단으로 쌓았다. 명박산성은 국민과 소통하기를 거부한 이명박 정부 불통의 상징이다. 당시 ‘쥐박산성’ 등 수많은 신조어가 유행했고, CNN, 뉴욕타임스, BBC 등 해외언론 보도를 통해 세계적인 오명까지 얻었다. 

명박산성이 하도 유명해서 그렇지, 경찰차벽의 원조는 노무현 정부다. 경찰차벽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이고, 전경버스 대신 컨테이너 장벽이 등장한 것은 2005년이다.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차벽이 등장했다. ‘2017 세계 시민상’ 수상 소감에서 문 대통령은 자신을 “민주화운동을 했던 학생이었고, 노동·인권변호사였으며, 촛불혁명에 함께 했다”고 소개했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한국갤럽의 9월 넷째 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에 대한 비호감도는 60%를 기록했다. 국민의힘이 ‘뭘 해도 싫다’는 비호감이 여전히 60%에 달한다. 그런데 그런 비호감 세력이 광화문 차벽을 ‘재인산성’이라고 비판하니, 오히려 차벽 봉쇄가 정당화되는 역효과가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그 비호감 세력은 지난 8·15광화문집회에서 코로나19 재확산의 위험을 실제로 보여준 집단이 아닌가. 그러니 K-방역을 위해서는 광장을 차벽 봉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역설이 성립한다. 

광장은 사회적 약자에게 열린 공론의 장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는 약자를 위한 권리다. 재벌 총수들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광장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가 굳이 필요 없다. 그들은 신문과 방송을 가졌고 값비싼 회의장을 빌릴 수 있으며, 국회 정론관에서 아무 제약 없이 브리핑을 하면서 심지어 면책특권까지 누릴 수 있다. 광장을 개방하고 집회·시위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굳이 헌법적 권리로 명문화한 까닭은 사회적 약자에게 공론장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광화문 광장을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공론장이 봉쇄돼서 숨 막히고 고통스러운 당사자들이 나서서 되찾는 수밖에 없다. 권리는 공짜로 거저 주어지는 시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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